동아시아 목조건축의 창신(創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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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근대주의 건축이 등장한 이후,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동아시아 목조 건축의 명맥은 끊어졌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최근 100여 년간 과거와 현대를 연결하려는 많은 건축적 시도가 있었으나, 이 노력이 명확한 성공을 거두지 못한 이유는 현대 건축과 동아시아 전통 건축 간의 재료, 구조, 시공의 차이에서 비롯된 구축(構築, tectonics)의 차이 때문이다.
콘크리트나 철을 이용해 전통 목조 건축을 모방하더라도 본질적 차이는 여전하며 그 특유의 공간감과 구축의 미학을 재현하기도 어렵다. 20세기 초 일본의 제관주의 양식과 20세기 중반 한국에서 전통 건축의 외형을 콘크리트 구조로 빌린 절충주의가 지속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Fig. 01]
Korea Pavilion at Montréal Expo 1967, Swoo-Geun Kim
China Pavilion at Shanghai Expo 2010
Hoam Museum (1982)
JR Nara Station (1934)
[Fig. 01] 한국과 일본의 절충주의 건축
비평의 배경
동아시아 전통 건축의 현대적 재해석에 대한 시도는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으나 동아시아에서 전통과 현대 건축 간의 불연계성은 여전히 강하게 존재한다. 이는 현대 건축과 전통 건축의 구축 방식 차이에서 비롯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피상적인 외관을 차용하는 것으로 해결하려는 것이 일반적이다.
동아시아 목조 건축의 핵심 요소인 공포(栱包)를 예로 들어보자. 역사적으로 이 구조 시스템은 정교하게 결합된 부재들이 3차원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구조적으로 상호작용하는 원리를 가진다. 공포는 단순히 구조 시스템으로서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정교한 장인정신과 목재 가공 기술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공포는 동아시아 목조건축에서 구조, 장식, 기술의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현대 건축에서도 지속적으로 재해석 돼 왔다. [Fig. 02]
그러나, 아시아 건축가들이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온 결구와 공포는 대부분 복잡한 결구 방식에 의한 짧은 부재의 입체적 결합이라는 원칙을 지키지 않고, 단순하게 계량화된 부재가 층층이 쌓인 형태로만 표현된다. [Fig. 03] 목재의 순수한 결합을 위한 장인정신은 사라졌으며, 시공과 구조적 계산의 편의를 위해 장식적이거나 콘크리트로 모사된 경우도 많다. 결과적으로 동아시아 건축의 본질과는 동떨어진 현대 건축의 어휘로 ‘전통’을 추상화한 표피적 시도로 그치기 일쑤다. 2010년 상하이 엑스포의 중국관과 같은 프로젝트는 이러한 경향을 잘 보여준다. 철과 콘크리트로 지어진 이 거대한 공포 구조체는 형태가 구조 원리와 완전히 분리되어 있으며, 오로지 상징과 이미지로만 소비되려는 목적을 가진다.
Yusuhara Wooden Bridge Museum 2011, Kengo Kuma
Japan Pavilion at Seville Expo 1992, Tadao Ando
[Fig. 02] 전통 결구(공포)의 현대적 해석
Modern application: simplified stacking of repetitive elements
Traditional joinery: combination of diverse methods
[Fig. 03] 현대 건축에서 적용된 전통건축의 원칙과 다른 계량화된 부재의 반복과 단순한 결구방식
동아시아 목조건축의 새로운 탄생을 위한 두 가지 원칙
동아시아 건축의 현대적 재해석을 위해서는 과거와 현대 건축 간의 구축적 불연계성과 전통의 피상적 형태 차용을 극복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먼저 새로운 관점으로 동아시아 건축을 분석해야 한다. 지금까지 현대적으로 해석된 동아시아 건축 요소들은 주로 지붕의 형태나 건물 배치, 입면의 비례 등 외형에 국한된 경우가 많다. 목구조의 결합을 사용하는 것도 비구조적인 피상적 적용인 경우가 많다. 동아시아 건축의 핵심 요소는 내부 공간을 구성하는 기둥-보의 합리적인 프레임 시스템과 상징적인 지붕을 위한 독창적인 구조 방식을 결합하는 데서 온다. 따라서 이러한 구조적 관점에서 동아시아 고전 건축을 재탐색할 필요가 있다. [Fig. 04]
또한, 전통을 재해석하기 위해 기술을 능동적으로 습득하고 활용해야 한다. 동아시아 목조 건축이 100년 전 사라진 이유는 목재 부족, 장인정신 계승의 어려움, 대량생산의 어려움 등이다. 그러나 현재 공학 목재 생산과 가공 기술의 발전으로 목재 부족과 대량생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장인정신으로 탄생한 복잡한 결구 방식도 디지털 가공 기기에 의해 부활할 수 있다. 최근 동아시아 현대 목조 건축은 유럽과 미국식 목구조 건축을 답습하는 것에 불과하다. 기성 건축 산업에 의존하지 않고 새로운 건축을 기대할 수는 없다. 건축가들이 새로운 시공 및 설계 기술을 진취적으로 받아들이고 적용할 때 동아시아 건축의 새로운 영역이 발견될 것이다.
[Fig. 04] 동아시아 목조건축의 단면과 결구 분석 및 시각화
김재경 건축연구소의 디지털 설계와 구축
앞서 설명과 같이 지금까지 이루어진 동아시아 목구조의 재해석은 구축적인 이해 없이 외형을 단순히 모방하거나 전통의 구조 시스템을 단순화한 경우가 많았다. 이는 근대 건축의 합리성, 효율성, 규격화의 목적이 반영된 결과이다. 그러나 동아시아 목구조의 외부 형태와 내부 공간의 독창성은 복잡하고 입체적인 목재 결합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구조 시스템에 기인한다. 따라서 동아시아 목조건축의 진정한 재해석을 위해서는 역사적인 사례의 심층적인 분석을 통해 구축 방식의 원리와 논리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최신 기술은 규격화의 기치 아래 사라진 동아시아 목조 건축의 독창적인 결합을 되살릴 것이다.
김재경 건축연구소의 작업은 '동아시아 목조 건축의 새로운 탄생'이라는 일관된 주제를 바탕으로 한다. 동아시아의 기념비적 목조 건축을 분석하고 영감을 얻어 새로운 디자인적 가능성을 모색한다. 디지털 장인정신의 기치 아래 혁신과 전통의 결합으로 설계와 시공에서 새로운 영역을 구축하고 특별한 공간과 형태의 건축을 실현한다.
이러한 목표 의식은 디자인 연구와 다양한 스케일의 목업 모형, 파빌리온을 통해 선 실험되었으며 이 건축 실험은 실현 프로젝트에서 설계, 제작, 시공 모든 과정 상의 시행착오를 줄이는 큰 역할을 하였다. 이 과정은 건축가가 디지털 전문가로서 건축의 모든 절차에 관여하여 작업의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목적 의식을 담고 있다. [Fig. 05]
디지털 장인으로서 건축가의 역할은 ‘세 그루 집’, ‘빛의 루’, 그리고 ‘치유의 집’의 설계, 시공 과정에서 잘 보인다.이 두 프로젝트의 나무 구조는 알고리즘 툴을 이용해 동아시아 목조 건축의 공포를 새롭게 해석한 결과물이다. 알고리즘 툴은 5,000개가 넘는 자작나무 합판 부재의 모델링도 용이하게 하였다. 또한, 구조해석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구조적 안정성에 건축가의 심미성이 부합한 최적의 형태를 찾을 수 있었다. 제작에 있어 CNC 공작기와 5축 가공기로 복잡한 형태의 절단과 접합 부위의 세밀한 가공이 가능해졌다. 마지막으로 시공적으로 ‘빛의 루’와 같은 작업에서는 수 천개 부재의 조립 효율성을 위해 증강현실을 도입하였다. [Fig. 06]
[Fig. 05] Tree IV
[Fig. 06] 디지털 장인정신
결론
궁극적으로 나의 작업은 기술과 역사의 학제 간 융합을 통해 잊어온 문화적, 지역적 정체성을 되살리는 건축을 추구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지역과 문화적 특성이 모호해지고 건축적 가치가 일반화되는 이 시대에 과거와 미래를 반영하는 역사 이론과 기술을 통합하는 사고 체계를 통해 건축이라는 결과물을 만들어낼 때, 건축이 시간을 초월한 감동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 새로운 건축은 사라졌던 동아시아 목조 건축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다.